응답하라 1997
나는 그 세대였다. 예약한 씨디를 받으러 새벽에 레코드 점에 갔었고, 콘써트가 있는 날엔 토요일 종례를 땡땡이 치던 세대. 모두 잊고 살지만 그 시절엔 정말 씨디 플레이어를 들으며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고, 앨범 발매를 하는 날에는 레코드 점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. 그 시절의 설레임을 그리움으로 불러 일으키는 드라마다. 응답하라 1997은.
물론 그 시절 오빠를 사랑하던 나의 혹은 우리의 간증같은 드라마라서 좋은건 아니다. 이제는 이십대 후반 혹은 삼십대의 수많은 내가 기억하는 자신의 소녀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소년에 대한 기억. 그건 몹시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해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아름답고, 아름답게 미화되어 기억된다.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기록과도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있다.
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6화 마지막 장면,
내용에 대한 애정은 뒤로 하고라도, 삼십대 중반이 된 그 시절 누군가의 영웅은 아직도 앳띤 얼굴을 하고 소년의 감성을 연기하고 있었다. 그의 건재함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1997년을 더욱 빛나게 하고, 그 시절에 나와 함께 했던 또 다른 이도 어딘가에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. 이 드라마의 아이러니이자 가치는 어쩌면 왕년의 자기 노래를 듣는 또다른 누군가를 연기하는 은지원처럼, 과거를 현실로 불러들여와 1997년의 나와 2012년의 나를 마주하게 하지만 그 응답의 끝엔 대책없는 향수 외엔 남는게 없다는데에 있다. 과거에 대한 역치가 그리움 이라는건 어쩜 너무 슬픈 일이니까 말이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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